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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ldlike

 Mar 10 - Mar 26, 2023  | ROY GALLERY Apgujeong A7

'예술가들은 왜 어린아이처럼 그림을 그리는가?'에 대한 'ChatGPT'의 영문 답변을 '구글 번역'으로 한국어로 번역함. (ChatGPT)모든 예술가가 어린이처럼 그림을 그리는 것은 아니며 어린이처럼 그림을 그리는 경우에도 다양한 이유가 있을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음은 몇 가지 가능한 설명입니다. 창의성 탐구: 많은 예술가들이 어린 시절 경험한 창의성과 자유의 감각을 활용하기 위해 어린 시절처럼 그림을 그립니다. 어린아이처럼 그리는 것은 전통적인 화풍과 기법의 제약에서 벗어나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 천진난만함 포착: 아동 미술은 종종 천진함과 경이로움을 특징으로 하며, 일부 예술가는 의도적으로 자신의 작품에서 그러한 느낌을 포착하려고 시도할 수 있습니다. 이는 감정을 불러일으키거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작품을 만들려는 아티스트에게 특히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기법 실험: 일부 예술가는 새로운 기법을 실험하거나 평소 스타일에서 벗어난 작업에 도전하는 방법으로 어린애 같은 방식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습니다. 이것은 자신을 창의적으로 추진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는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내면의 아이와 연결하기: 아이처럼 그림을 그리는 것은 예술가가 내면의 아이와 연결하고 장난기와 기쁨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막혔거나 창의적으로 막힌 느낌이 들고 새로운 영감을 찾아야 하는 아티스트에게 특히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요컨대, 예술가는 창의성을 탐구하고, 순수함을 포착하고, 기술을 실험하고, 내면의 아이와 연결하려는 욕구를 포함하여 다양한 이유로 어린아이처럼 그림을 그릴 수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그 이유는 아티스트마다, 작업마다 다를 것입니다.

포스터_childlike.png

related Artist

Installation view

Works

이기찬

과거의 대상을 통해 기억을 환기하고 현재를 매개한다. 질감과 물성을 실험하여 확장된 평면 회화의 경계를 가늠한다. 많은 문제의 본질적인 발생 원인은 큰 범주 안에 포괄되어 있는 개념이 언어적, 물리적으로 분리됨으로써 그 연결고리가 끊어진 것에 있다. 씨앗, 잎, 꽃, 가지, 돌가루 등의 자연 재료를 사용하는 것은 '미술재료'와 '자연물'을 연결 짓기 위함이다. 작품에 등장하는 재료와 소재들은 모두 과거와 현재를 잇는 매개물이다. 작업의 과정에서 드러나는 '잘라내기'와 '복사하기', '붙여넣기'의 행위는 시간을 담보로 하는 물리적인 공정을 수반한다. 화면 속에서 대상과 이미지는 잘라내어지고, 새로운 물성과 질감을 가진 재료들을 통해 다시 붙여 넣어진다. 자연 재료들은 물감과 함께 섞인 채 화면 위에 쌓여 올라간다. 이 재료들은 표면이 가공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언젠가는 소멸할 수도 있음을 전제로 한다. 이러한 변형과 가공의 과정은 회화의 화면 속에서 시간을 붙잡는 층위(layer)를 만들어내며, 축적을 통한 보존의 서사를 드러낸다. 과거와 현재의 형상을 화면 속에 기우는 것은 단절된 기억과 시간을 잇는 것이다. '우리'의 개념을 통합하는 실험이 보는 이들에게까지 확장되기를 바란다. 시리즈는 과거와 현재를 잇는 매개물로서 호랑이를 내세운 연작이다. 작업의 모티브가 된 동양의 옛말에서 호랑이는 다중적이고 상반된 상징을 갖는다. 이는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권력의 상징, 권선징악의 심판자 혹은 두려운 재난으로서 존재한다. 호랑이는 용맹한 영웅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자기 자신에 빗대어져 안위를 기원하기도 했다. 시리즈의 호랑이는 크게 손 인형, 종이접기, 인형탈 세 가지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이들은 각각의 화면에서 연관된 속담의 주인공이 되기도 하고 조연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뒤섞이고 모순된 호랑이들은 상황에 따라, 혹은 순간에 따라 변화하는 현대인의 모습과 닮아있다.

유혜리

2023 우리들의 초상화 - 우연의 일치였는지 모르겠지만 사랑하는 가족의 죽음과 집에서 키우던 열대어의 죽음이 동시에 일어난 적이 있다. 죽어있는 물고기를 보는 순간 물고기와 우리 인간의 삶이 크게 다르지 않음을 깨달았고, 그날 이후 물고기라는 대상은 나에게 특별한 이미지로 각인되었다. 물고기는 새로운 의미가 부여되었고 더 이상 바라봄의 대상이 아니었다.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가 되어 우리의 삶을 대변해주었다. 중력을 거스르며 유영하고 있는 그들의 모습에서 삶을 향한 우리들의 열정과 치열함이 겹쳐 보였다. 각기 다른 옷을 입고 저마다의 일을 하며 매일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물고기에 투영하여 작업을 진행하게 되었다. 인간들은 우월하다는 사고로 자연을 정복하며 살아왔다. 물고기란 대상을 볼 때도 대부분 수조 속 물고기들을 보며 관찰자의 시점에서 바라본다. 하지만 바닷가에 가서 스노쿨링을 하고 있으면 물고기들이 내 주위를 헤엄치며 오히려 나를 관찰하게 된다. 누가 더 우월한 존재인지의 여부는 중요하지 않게 된다. 그 순간 나와 물고기는 함께 존재하고 있는 생명체일 뿐이다. 작품 속 물고기가 등장하는 풍경은 결국 바라보는 관찰자적인 시점이 아니라 나의 이야기 우리의 이야기이며, 그 안에 공존하고 있는 상태이기도 하다. 이번 전시에는 신작이 몇 점 추가되었는데, 작업 배경에는 주로 선인장이 들어가 있다. 선인장과 물고기들은 어찌 보면 상반되는 이미지일 것이다. 물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물고기들과 물이 없는 메마른 사막이라는 공간을 상징하는 선인장을 배경에 넣음으로써 생기는 아이러니한 간극을 통해 시각적인 즐거움을 연출하고, 때로는 힘들고 고단한 세상 속에서 자신을 찾아가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그리고자 한다. 작품 속 다양한 물고기들을 통해 우리의 삶을 돌아보기도 하고, 물고기들에 감정이입을 하며 쉼을 얻기도 하며 매일 매일을 의미있게 살 수 있는 원동력을 얻어가며 희망을 발견했으면 하는 바이다.

​수현

나의 작업은 동화적 상상력으로 우리가 현대 소비사회에서 경험하는 문제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야기의 주요 주제들은 환경과 죽음, 사회 부조리와 경쟁과 같은 잔혹동화에 가깝다. 아직 동화의 결말이 정해지지 않았고, 그 주제의 무게를 알 수가 없다. 위기와 웃음, 어둠과 무지개가 공존하는 이 세계는 위험한 소리를 내며 덜컹거리지만 여전히 즐겁기만 한 롤러코스터와 같다. 각 이야기는 하나의 연출된 장면으로 압축된다. 화면 속 동물 이미지들은 어떠한 현상을 묘사하거나 은유하는 주요 소재이다. 화면에 닭과 오리가 자주 나오는 것은 나의 작업이 치킨집, 오리고깃집에서 볼 수 있는 이미지들로 부터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간판, 메뉴판 속 닭들은365일 죽음 앞에서도 활짝 웃고 있다. 이렇게 친절한 미소는 맛있는 음식과 더불어 기분 좋은 양념이 된다. 하지만 이 자본주의 미소는 한편으로 아주 뜻밖이며, 상당히 기이하다. 최근 친환경 열풍으로 환경은 훌륭한 자본, 보호는 유용한 마케팅 수단이 되어버렸다. , 과 같은 작업들은 마치 북극곰 이미지가 인쇄된 가방을 팔며 북극곰을 살리겠다는 방식의 최근 동물복지, 환경마케팅에 대한 당혹감과 실소라고 할 수 있다. 한편, 동물은 이상적인 환경을 완성하는 부품처럼 취급되기도 한다. 인간의 정서를 달래주기 위한 존재방식은 광대와 다를 바 없다. 기꺼이 광대가 되어준 동물들을 위해 사람들은 무지개 다리를 놓아주곤 한다. 는 죽음마저 애완견처럼 예쁘기를 기대하는 마음을 담고 있다. 현대인을 자극하는 이야기들은 공감과 공유로 세상에 빠르게 전파된다. ‘꽃길만 걷자’는 말처럼 좋은 말은 다수의 공감을 얻는다. 이러한 공감을 불편해 하는 소수의 알레르기 체질은 쉽게 공격받기도 한다. 수 많은 공감의 힘은 마치 인스턴트 식품과 같이 쉽게 허전함을 달래고, 공격의 스릴은 배가 된다. 하지만 공감은 빠르게 잊혀지고, 공격은 무디어져 버린다. 좋은 말도, 예쁜 꽃도 누군가에게는 두드러기일 뿐이다. 동화는 낭만적일 수도 있고, 아프거나 충격적일 수도 있다. 각색된 동화는 따듯함을 위해 희생당한 오리들을 걱정하면서, 정작 고급 패딩이 부러운 얄팍한 신념이 드러나지 않도록 위장한다. 책임을 농담이라는 말로 회피하듯이, 이야기는 허무한 말장난으로 끝나기도 한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은 실제로 피부로 경험하지 못하며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은 종종 무기력한 상태를 만든다. 그렇다고 일상은 줄곧 무력할 수도, 낙관할 수도 없다. 오늘도 우리는 쓴웃음이 터지지만 결국 웃음을 사수할 수밖에 없다. 나의 작업은 위기와 웃음이 서로 붙잡고 있는 지점이다.